궁왕푸(恭王府) 저택 구경

 

니오후르허션(?祜祿和王+申, 서기 1750-1799년)은 청나라 건륭제와 가경제 시대에 대신이었고,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렸으나 뇌물을 많이 받아 원성을 높이 산 결과로 자연수를 누리지 못했다.

화신은 만주 사람으로 머리가 좋아 만주어, 중국어, 몽골어, 티베트어에 어릴 때부터 능통하였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풍영렴에게 의탁했다가 그 손녀와 결혼했고, 건륭제를 호위하다가 그의 총애를 받아 1781년에는 국고를 책임지는 호부상서가 되었다. 뇌물을 많이 받아 재산을 늘이느라고 비난을 받았으나, 정치 능력이 뛰어나 40대에 수상에 해당하는 자리 (首席軍機大臣)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건륭제가 1799년에 죽자, 가경제는 화신(허션, 和王+申)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능지형으로 죽을 처지였으나 그는 비단으로 목을 매서 자진하였다. 이때 가경제가 몰수한 재산은 9억냥이었고, 국가 총 예산 12년 치를 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가경제가 이 돈을 내탕금으로 쓰자, 서민들은 “화신이 죽자 가경이 배불리 먹는다”고 비꼬았다고 한다. (위키)

서양에서는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이 비슷한 잘못을 저질러 멸망하게 된다. 적당히 조금만 쌓아 놓으면 괜찮았을 터인데, 재산을 너무 많이 쌓으면, 아무래도 주위에서 나쁜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게 된다. 결국 무슨 죄인가 뒤집어 쓰게 마련이고, 그러면 제 목숨을 다 살지 못하게 된다.

서기 1096년에 1차 십자군이 시작되자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가는 유럽의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전 기사단이 조직되었고, 1129년에 교황의 공인을 받았다. 유럽의 귀족 신자들이 죽을 때 많은 재산을 바쳐 성전 기사단은 큰 경제 조직이 되었지만, 프랑스 임금 필립 4세에게 큰 돈을 빌려 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필립은 돈을 갚기 싫어 기사단원을 상당수 체포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이들을 화형에 처했고,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그의 압력에 못 이겨 성전 기사단을 해체하였다. 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일부는 스위스 은행의 모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화신은 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사람이었던 듯하다.

왕푸 입구로 가는 길.

왕푸 궁전 지도. 1776-1799년에는 화신이 여기 살았고, 1852-98년에는 왕자 공(궁,恭)이 살았다. 그래서 이름이 궁왕푸이다. 아래쪽에는 왕자의 궁궐이고 황제의 것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위쪽은 동산이고, 여기 저기 인조 산과 연못이 있다.

기도문을 넣은 회전 원통 (prayer wheel). 라마교에서 쓰인다. 기도가 바람에 날리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 듯. 화신과 건륭제는 라마교 신자였고, 그래서 화신은 이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쌓았다.

궁전 건물

동산. 수저우(蘇州) 스타일로 지었다.


동산 중앙의 작은 연못. 어디에나 사람들이 들끓는다.

정원에 있는 복도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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