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 성

1. 히메지 성의 건축

히메지 성(姬路城)은 일본에서 보존되어 있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고 한다. 히메지 성은 천수각을 가진 12성 중의 하나이다. 천수각(텐슈카쿠, 天守閣)은 성주를 보호하려고 만드는 망루이다. 성을 침입하는 사람은 망루에서 지키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게 설계되어 있다. 히메지에는 두 심주로 지탱하는 7층짜리 대천수와 5층짜리 소천수 3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기 1346년에 아카마쓰 사다노리가 아버지가 히메야마 산에 세웠던 사찰을 토대로 이 성을 지었다고 한다. 구로다 시케다카가 조다이(성 관리자)로서 입성하여 작은 성채를 개축하고 1573년까지 구로다 가문이 조다이가 되었다. 1609년에 대체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나 히메지 성은 기반이 든든하지 않았고, 경제적 부담과 기술 부족으로 수리를 미루었다.

에도(江戶)시대에는 신반 또는 후다이 다이묘가 대대로 히메지의 번주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에 폐성령이 내려 대부분의 성을 허물게 되었다. 히메지 성도 허물게 되어, 개인에게 팔렸으나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폐성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2차 대전)이 끝난 후에 히메지 성은 문부성의 소유가 되었다.

2. 도꾸가와 히데타다의 일국일성령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에 쇼군이 되어, 자기가 다이묘로 있던 에도(도꾜)에 막부를 설치했다. 그는 가신 집단인 신반 다이요(親藩大名),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충성을 맹세한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 이렇게 3등급으로 구분하여 다이묘들을 차별 대우하였다. 주요 지역에는 아예 다이묘를 두지 않았다.

신반 다이묘에게는 큰 영지를 주고, 그 사이에 조그만 영지, 그리고 변방에는 도자마 다이묘를 배치하고, 후다이 다이묘 들에게는 작은 토지를 나누어 주면서 중앙 정치에 참여하는 권한을 주었다. 이러한 안정 위주 정책으로 에도 시대는 264년 동안 계속되었다. 도자마 다이묘는 이러한 차별 대우에 불만이 많았고, 후일에 메이지 유신 때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데 앞장섰다.

1615년에 도꾸가와 히데타다가 일국일성령을 내려 다이묘들의 성장을 막았다. 다이묘가 성을 여러 개 짓도록 버려두면, 커져서 쇼군에 대항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역이 다이묘의 지역 경제를 부강하게 하고 쇼군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또한 지방의 무역을 금하였다 (쇄국 정책). 똑같은 이유로, 메이지 유신 이후로 다이묘가 간접으로 다스리는 번 제도를 폐지하고, 부(府)와 현(縣)을 두어 (閉藩置縣) 중앙 정부가 직접 통치하고, 폐성령을 내렸다.

3. 태평양 전쟁

히베지 성은 벽은 불에 타지 않도록 회벽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성 중에서 제일 잘 보존되어 있어, 1993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든 성이지만, 한 번도 전투에 말려든 적이 없다. 2차 대전에 히메지에 불발탄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군수 물자를 만드는 곳이 아니므로 미군의 폭격 대상이 아니었던 듯하다.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와 트루만 (Harry S. Truman) 대통령 밑에서 전쟁을 지휘하던 국방 장관 헨리 스팀슨 (Henry Stimson)은 교토에 신혼 여행까지 한 사람이다. 일본의 문화를 아꼈으므로 그는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요지가 아닌 문화 시설의 파괴를 꺼려 했다. 그가 아름다운 추억을 가졌던 교토를 폭격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듯하다. 원폭 대상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제일 대상은 교토였으나 그가 적극 반대하여 쿄토는 제외되었다고 한다.  대신 다른 도시들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4. 히메지 성의 모습

 

입구에서 본 히메지 성.

 

성의 모서리.

선이 아름답다.

 

히메지는 하루 아침에 지어지지 않았다. 성을 고쳤던 역대 성주들의 기와 문양.

 

다이묘의 행진

 

사무라이의 의논?

 

있음직한 공격에 대비한 천수각의 방어 장면

 

각 층을 빙글빙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이런 설계는 곧장 적이 침투하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시간을 벌자는 설계이다.

 

맨 꼭대기에서 누구나 신사참배(神社參拜)를 할 수 있다. (일본인은 참배를 조선에서 강요하여 많은 기독교 신자가 어려움을 겪었다.)

신도는 밧줄을 당기고 손벽을 치고 기도를 드린다.

담 밑에서 본 천수각

 

이시 오또시 (가까이 오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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