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소와 밀레 (Jean-François Millet)의 작품

장 프랑소와 밀레는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서 자라서 농부들의 삶을 그린 작품을 많이 그렸다. 1840년에 파리에서 첫 초상화 작품이 파리의 살롱에서 전시된 후에 셰브르 (Cherbourg)에서 초상화로 개업을 했으나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듯하다. 폴린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사했으나, 아내는 폐병으로 곧 죽고 밀레는 다시 셰브르로 돌아갔다.

1845년에 카트린 르메르 (Catherine Lemaire)와 결혼하여 르아브르(Le Habre)에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잇다가 다시 파리로 이사했다.
밀레가 가난한 농부의 생활을 많이 그린 것은 사실이나, 꼭 이 때문에 유명해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면 어떤 까닭으로 그의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1.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닭 모이를 주는 여인, 1846-48년.



양털 깎는 사람들, 1851/61년.



들에서 낳은 송아지를 가지고 돌아가는 농부들. 1864년.



장작을 패는 사람, 1858/66년. 오버르뉴(Auvergne)에서, 1866/69년.



양치기. 뿌연 하늘 배경이 신비스럽다. 1871/74년.

 

2. 오르세이 미술관 (Musee d’Orsay)
지금은 이 미술관에서 사진을 허락하지 않는다.



L’eglise de Greville (그레빌의 교회)



체질하는 사람. 1866-68년.



여자 목동 (Bergere avec son troupeau)



양떼의 귀가 (Le retour de troupeau), 1846년?



Le repos des faneurs (The rest of the Haymakers) 건초 만드는 사람의 휴식.
물을 마시는 농부의 갈증이 느껴진다.



Des glaneuses (이삭 줍는 사람들). 1857년. 씨뿌리는 사람과 저녁 종과 함께, 이것은 밀레의 3대 작품이라고 한다. 수확한 뒤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여인들에 대한 구약 이야기를 연상케 하여 서민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L’Angelus du soir (저녁 종), 1857년. Gold Appleton의 위탁을 받고 그린 그림인데, 처음에는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 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저녁 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몇 년 뒤에 미국과 경매 전이 벌어졌으나 프랑스에서 80만 금프랑에 팔려, 지금까지 오르세이 미술관에 있다.

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해질녘에) 송아지 부르기


가을 집더미, 밀레는 친구인 루소의 후원자요 기업가인 프레데릭 하트만으로부터 4계절을 주제로 그림을 부탁받았다. 이 그림에서는 가을에 이삭 줍는 사람들이 저녁에 떠나고 양들이 먹도록 내버려둔 장면을 그렸다.


터키 떼가 있는 가을 풍경. 터키 몇 마리리를 돌보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어딘가 쓸쓸한 가을 풍경이다. 배경은 바비존인데, 여기서 밀레는 일생의 대부분을 지냈다.


풀을 긁어 모으는 여인.

4. 어째서 밀레의 3대 작품이 유명한가?
(1) 씨뿌리는 사람 (1850년).

이 제목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별로 많지 않다. 예수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 그림의 인기의 근원인 것 같다. 중국 사람은 일찍부터 대나무 통으로 땅에 구멍을 뚫고 씨를 집어 넣고 흙을 덮는 방법을 썼는데, 서양에서는 곡식을 심는 방법이 잘 개발되지 않았던 듯하다. 예수의 시절에도 농부가 이 그림처럼 씨를 마구 뿌리고 흙을 대강 덮어서 싹이 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밀레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예수의 비유를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2) 저녁 종, 1857년

그림의 제목이 바뀌었어도, 결국 이 그림에서 기도를 드리는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 농민의 정서를 대표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농부로서 최선을 다하고 수확이 잘 되기를 기도드리는 마음이요, 아니면 저녁 종 소리를 듣고서 하루의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기도드리는 마음이다.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3) 이삭 줍는 사람, 1857년

이 그림은 룻기 2장에 룻이 보아스의 들에서 이삭을 줍는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이렇게 이삭을 주워서도 충분히 하루 먹을 것이 나왔을 것이다.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삭을 주웠을 터이지만.

이 세 그림 모두가 사람의 영적, 정신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그림의 내용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른다. 1850년 대에 그린 양의 우리(The Sheepfold)도 ‘잃어버린 양’과 ‘선한 목자’의 비유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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