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목동들의 찬미 (Adoration of Shepherds)
피피 (Giulio Pippi) 작품, 1546년. 바른 쪽의 인물은 복음서 저자 요한이고 왼쪽은 성자 론지누스(Longinus)이다. 전통(빌라도 행전에 딸려 있던 니고데모 복음)에 따르면, 론지누스는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받을 때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는 로마인 백부장이고,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외쳤다고 한다. (신약에 이렇게 말한 백부장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 창의 (청동) 촉은 기적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되어 프랑스의 샤를마뉴/샬러메인 (Charlemagne, Charles the Great) 왕이 유럽의 전투에서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데 써먹었다. 그 후에 이 촉은 오스트리아로 옮겨졌는데, 히틀러(Hitler)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이것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이후에 그는 이 창의 마력을 믿었는지, 철갑을 입은 기사의 모습으로 선전하였고, 대담하게 유럽의 정복을 시작하였다. 러시아를 정복하려다가 결국 전쟁에 패하였으니, 이 창에 아무런 마력은 없었던 듯하다.
Georges de La Tour 작품, 양 치는 목자들이 찾아와 변변치 못한 선물을 드린다. 바른 쪽에 요셉이 너무 나이든 할아버지이다.
Jacob Jordaens 작품, 1650년 이후. 많은 목동들이 모여서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먹이는 것을 구경한다. 좀 비켜서도 좋을 터인데.
Jousepe de Ribera 작품, 1650년. 마리아 옆에 있는 요셉이 너무 늙었다. 서양에서 전쟁에서 진 사람이 승자에게 모자를 벗는 관습이 생겼는데, 무기를 내려 놓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씨리아인이 에집트인을 벌거벗겨서 포로로 데리고 간 것보다 훨씬 개량된 관습이다. 예수의 시절에 모자를 벗는 관습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Luca Giordano 작품, 1688년 경. 웬 목동들이 이렇게 많이 마굿간에 몰려들었을까?
두 사람(Louis and Mathieu Le Nain)의 작품. 1630-32년. 양 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요셉은 머리가 벗어졌다. 천사들은 어린애로 태어나지 않으므로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는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으므로, 아기 천사들이 그 장면을 구경했을 것이라고 화가들이 상상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