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시대의 군인 복장(服裝)

전국 시대의 끝, 기원전 221년에 진(秦) 나라의 31대 왕, 영정이중국 전역을 통일하여 처음으로 황제에 올랐다. 그는 조(趙) 나라 상인 출신으로 승상이 된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진시황은 10년 동안 다스렸고 전국을 순회하다가 죽고, 아들 호해가 이어 받았으나 206년에 나라가 망했다. 그러니 진나라는 15년 동안밖에 버티지 못한 단명한 왕조였다.

중국 정부가 진시황릉 박물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소장된 것을 홍콩에서 전시하였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의 민심을 안정시키느라고 특혜를 베푼 듯하다. (여기에 나오는 사진은 모두 홍콩 미술관에서 열렸던 ‘진시황의 일통천하(一統天下)’ 전시에서 찍은 것이고, 전시된 물건은 달리 표시가 없으면 진시황릉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진나라가 전국 시대의 여러 나라를 통일하고 잠시 존재했던 나라이므로, 이 군인 복장은 전국 시대의 군인 복장 뿐 아니라 당시의 청동 및 철기 기술을 보여 준다. 청동 병기는 비싸서 보통 군인들이 쓰지 않았고, 철제 병기는 실전에 쓰였지만 무덤에 파묻을 정도로 값싼 무기는 아니었던 듯하다. 군복이나 갑옷은 면, 가죽, 그리고 돌로 만들어졌고, 청동 무기나 철제 갑옷 따위는 황제의 무덤에 없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청동 물품은 황제가 타고 다니는 전차 뿐이다.

1. 기마병

테라코타(terracotta, 구은 흙이라는 뜻) 기마병. 몸통 부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돌조각으로 짠 갑옷을 입었다. 왼쪽 손은 말 고삐를 쥐고, 바른 손은 활을 들었던 듯하다. 둥근 가죽 모자를 썼고, 바람에 날리지 않기 위해서 턱 있는 곳까지 끈으로 묶었다. 기마병이므로 말을 오르 내리고 활 쏘는 것을 쉽게 하려고 보병보다 겉 옷과 갑옷이 짧다. 또한 각반을 차고 장화를 신었다. 정탐과 기습을 위하여 이러한 진나라 기마병들은 집중 훈련을 받았다.

석개갑(石鎧甲: 갑옷 개, 돌로 만든 갑옷)과 돌 투구 (협서성 고고학원)

2. 궁수

채색된 무릎 꿇은 궁수, 상투를 바른 쪽에 틀었다. 싸우는 데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 궁수는 쇠뇌(crossbow)를 당기는 모습이과 바른 손의 쇠뇌의 손잡이를 잡은 형상이다. 쇠뇌는 오랜 훈련이 없이도 활을 정확하게 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몸 전체가 물감으로 칠해졌으나 오랜 세월의 영향으로 거의 지워졌다. 상투와 머리카락을 붉은 색, 억굴은 분홍, 손은 엷은 분홍, 갑옷은 검은 색, 끈은 진홍색, 의복은 녹색, 앞이 네모난 장화는 갈색이었다고 한다. 돌 조각이 어깨 부분도 덮고 있다.

무릎 꿇은 궁수. 채색되어 있다. 머리 왼쪽에 상투를 틀었고, 붉은 띠로 묶었다. 왼쪽 옷깃이 바른쪽 위에 나와 있다.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쇠뇌를 당기고 있는 모습. 두터운 각반을 차고 있는 듯.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온다. 이런 궁수가 #2 구덩이에서 160명 발견되었다. 이 때가 전국시대의 끝이었으므로, 네모난 조각들은 아마도 청동이나 쇠로 만든 듯하다.

3. 보병
 

개갑무사. 보병은 갑옷을 입은 보병과 입지 않은 보병이 있는데, 이 사람은 갑옷을 걸치고 있고, 각반도 차고 있다. 이 사람은 머리를 가운데 가르마를 하고 있다. 여섯 갈래로 따은 머리가 뒷편에 접히고 머리 핀으로 고정시켰고 상투를 네모나게 틀었다 (가려져 있다). 바른 쪽 열린 손은 활을 쥐고 있었던 듯. 앞쪽, 뒷쪽, 그리고 어깨 조각을 걸치고 있다. (아마 뒷쪽에 보이는) 허리띠와 짧은 장화는 이 보병이 중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인 듯하다. 이미 외래 족속이 전국 시대에 고용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4. 장군

평상복을 걸친 장군. 이런 차림의 장군은 2개 밖에 없었다고 한다. 머리에 쓴 모자는 새꼬리 모양으로 턱 밑에 묶어 놓았고, 끝 부분은 가슴 위에 퍼져 있다. 가죽 띠를 허리에 둘렀고,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 오고, 왼쪽 손은 칼 따위의 무기를 든 듯. 모자는 전국시대부터 내려온 것. 두터운 각반은 청동이나 철제 무기로부터 다리를 보호해 준다.

5. 갑옷 입은 보병

갑옷 입은 보병. 상투를 틀었고, 바른 손은 활을 쥐고 있는 듯. 이러한 갑옷 입은 보병의 숫자가 제일 많은 듯하다. 전국 시대에 청동 제품의 기술이 많이 발달되었으나 이 시대에 또한 철기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러한 무장한 보병들이 전투의 주력을 구성했다.

6. 갑옷 입은 장군

갑옷 입은 장군. 새꼬리 모양의 모자를 썼다. 물고기 비늘처럼 네모난 조각들을 단 갑옷을 입었다. 8개의 매듭은 훈장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장군 모습의 조상이 지금까지9개 발견되었다고. 이 장군들 뒤에는 지휘하는 전차가 있고 군대의 주의를 집중하는 데 쓰이는 종과 북들이 있었다.

7. 전차 운전병
 

 

갑옷 입은 2륜 전차 운전병. 긴 모자를 썼고, 달리기 위하여 머리를 상투를 틀지 않고 납작하게 만들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를 입고, 각반을 하고, 앞이 네모난 장화를 신었다. 이 운전병은 말의 고삐를 쥔 모습을 하고 있다. 전차에는 지휘관이 타고 있을 것이다.
상(商) 나라와 서주시대부터 춘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전차는 전투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 지휘관이 전투 상황을 재빨리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 승리뿐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후퇴는 데도 필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전차 운전병은 진나라 때 4년 동안 훈련을 거쳐야 했다. 생도가 전차 운전을 통달하지 못하면, 선생과 생도 모두가 벌을 받았다.

2륜 청동 전차(戰車)가 둘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차는 쇠뇌, 활, 방패로 무장되어 있고 또한 양산이 고정되어 있다. 바퀴 살이 36개나 된다.

8. 테라코타 보병
 

 

테라코타 보병. 투구도 갑옷도 입지 않았으니 진나라의 경(輕) 보병이다. 왼쪽 옷깃이 바른 쪽을 덮고 있다. 이러한 경 보병의 수는 갑옷 입은 보병보다 적었고, 갑옷을 입은 주력 부대 앞이나 좌우에 배치되었다. 전령들처럼, 전투 시에 발이 빠르게 움직이는 군인들이 필요했던 듯.

갑옷 입은 테라코타 보병. 전투 부대의 중심에 배치된다.

9. 음악가
 



풍악을 울리는 군인. 손에는 (아마도) 현악기를 들고 있었던 듯하다.

10. 기타 장비

큰 청동 솟 (大鼎). 진나라 물건이 아니라 통일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듯하다.

진나라의 동종, Baoji(寶鷄) 청동 박물관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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