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즐레의 막달라 마리아 성당

파리에서 자동차로 두어 시간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브루고뉴 주에 베즐레라는 중세의 도시가 있는데, 여기에는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속하는 성당이 있다. 이 수도회의 표어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다.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의 어머니 헬레나(Helena)가 예루살렘에서 소문난 나무 십자가를 가져온 것에 자극을 받았는지, 유럽의 여러 나라에는 성지 순례를 하고 무엇인가 예수나 사도들의 유물을 가지고 와서 교회를 세우거나 증축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듯하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되어 있으니, 가짜가 많이 생겼을 터이고, 이러한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신빙성이 희박하다.

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하자 유럽의 여러 도시를 잇는 도로에는 로마 군대가 없어졌고, 따라서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날 위험 때문에 사람들의 여행이 많이 줄어들었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유럽에서 성지 순례자들의 안전한 여행을 돕기 위하여, 바다에서는 아니라도 육상 통로에 많은 십자군 기사들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서기 882년에는 베젤레의 수도사가 막달라 마리아의 유물을 성지에서 가져왔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기화로 큰 교회가 이곳에 섰으나, 위그노(Hugunot,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파가 16세기에 유물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1279년에는 다른 수도사가 상 막시민(St Maximin)에서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에 비싼 향유를 붓는 것을 새긴 석관을 발견하고 그 안에 유물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베즐레의 교회는 인기가 떨어졌다.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은 아직도 이스라엘의 막달라에 있고,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는데, 많은 사람이 이 둘을 혼동한 듯하다. 게다가 마리아는 흔한 이름이니, 막달라라는 작은 마을에도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예수의 시절에도 수십 명은 되었을 것이다.)

성자 버나드가 1146년에 이 교회에서 2차 십자군을 지지하는 설교를 하였고, 영국 왕 리차드 1세와 프랑스의 빌립 2세가 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 전에, 1190년에 석달 동안이나 이 교회에서 머물렀다.

자동차로 안내한 장 삐에르에게 감사드린다.

1.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

막달라 마리아 교회는 언덕 꼭대기에 있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이 교회 가는 길에는 꽃으로 장식된 집들이 많다.

 

2. 성당 건축미
 



교회 중앙의 철문 입구 상인방의 부조는 사악한 세상에 예수가 온 것을 그린다.


上引枋에 있는 부조. “ungodly people” 이 중에는 돼지 코를 한 사람도 있다.


왼쪽에는 십계명을 든 모세. 중앙에는 금송아지.






대성당 앞면의 세부.


3. 성당 내부
 


교회 내부


첫 순교자 스테반의 죽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서기 882년에 막달라 마리아의 유물을 프로방스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무슨 일이 있을까?



찬송과 예배가 시작된다.

최은관